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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뷔 시한부

우주 배영 2016. 12. 14. 22:58

김태형은 죽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었다. 사는 게 싫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손목을 그어 버릴 것이다. 머지 않아 행동으로 보여 줬다. 사실, 손목을 긋는다는 것쯤으로는 죽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죽고 싶었고, 삶에 싫증을 느꼈고, 사는 게 싫었지만, 죽는 건 무서운 스물셋. 과도를 들고서 거실로 나왔다. 과하게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쥐고 있는 팔의 혈관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벌써부터 어지럼증을 느꼈다. 제멋대로 움직여서 통제가 불가능했다, 내 몸이지만.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쑤셔 박았다, 그냥. 생고기에 칼을 찌르는 것처럼. 이 정도라면 모가지에 들어와도 될 것 같았다. 별것, 아니네....

아, 정신 병원인가.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다시 잤다.

꿈을 꿨다. 내가 나를 만나는 꿈. 안부를 물었다. 김태형은 행복해 보였다. 밟아 죽였더니, 곧바로 하늘이 빨갛게 물들었다.

가만히 누워 있었다. 소란스러운 옆 침대에도 무신경했다. 정신 병원은 이런 곳인가. 박지민, 박지민....... 지민아. 생각만 한다는 게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그리고 고요함. 헙, 아무도 듣지 않았겠지, 내 부름을? 이런 우연이. 가늘게 들리는 밭은 목소리. 엄마, 힘들어. 죽고 싶어.

지민아. 박지민은 미동이 없다. 두 번 더 불렀다. 눈꺼풀이 느릿하게 열린다. 우리는 시선을 맞췄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ー너는, 이름이 뭐야. ー내 이름, 박지민. 지민이는 웃으면 초승달이 되나 보다, 눈이. ー박지민이 둘이네, 그러면. 진짜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ー
... ​김태형.

너도 나사 하나 빠져서 온 것이냐 물었다. 또 눈을 초승달로 만들고는 고개를 저었다. 곧 나사만 남기고 떠날 사람이란다. 발목이 시려워서, 두 다리를 배배 꼬았다.

박지민의 침대로 넘어갔다. 냄새가 잔뜩 배겨 있어서, 마치 정말 박지민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ー지민아, 나 네가 될 것 같아. 마른 몸을 껴안았다. 박지민은 체구가 작다. 그래서 안으면 나에게 안긴 꼴이 되는데, 느낌으로는 내가 안겨 있는 것만 같다. 이유 없이 포근하다. 이 시간, 이대로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박지민이 내 머리통을 쓰다듬는다. 머리카락을 꼬아서, 다시 풀고를 반복한다. 그리고 눈을 뜨면 아침이다. 내가 잠꼬대를 했다고 한다. 뭐라고 했냐고 물으니, 입을 꼭 다물고 알려 주지 않는다.

나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박지민의 환자복 위에 옷을 얹고, 얹고, 얹고 그 위에 두터운 외투까지 얹었다.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입을 가리고 초승달을 만들었다. 병원을 몰래 빠져나갔다. 우리는 그날 바닷가에서 키스를 했다. 박지민은 귀에서 종이 울렸다고 했다. 내가 박지민 입술을 하도 물어뜯어대서 안 그래도 통통한 입술이, 명란젓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박지민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졌다.

박지민이 일어날 때까지 옆 병실에서 지냈다. 계속 울었다. 울음이 그치지 않아서, 그칠 때까지 울었다. 내 눈이 박지민의 입술처럼 부었다. 비명 같은 것이 들리기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그때, 그때처럼, 지민아, 하고 숨처럼 내뱉었다. 발작이 멈췄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ー죽지 마.
ー무서워?
ー무서워. 그리고 후회해. 내가 왜 너를 알은체했을까, 하고.
ー나 없이 어떻게 할래, 태형아.

이틀 동안 밤을 새웠다. 잠이 안 왔던 게 아니다. 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 시간에 박지민 얼굴을 더 봤어.

나를 어르고 달래는 박지민에, 자고 싶지 않았는데 잠들고 말았다. 또 꿈을 꿨다. 내가 죽였던 김태형이, 박지민과 손을 잡고 나왔다. 그 자리에서 박지민과 섹스를 했다. 김태형은 지지 않으려는 듯, 섹스하는 우리를 끝까지 지켜보았다. 박지민이 내 골반을 붙잡을 때, 깼다. 나는 내 침대로 옮겨져 있었다. 옆을 어루만지면, 잡아 오던 손이 없다. 박지민이 자고 있어야 할 자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누가 그 침대를 썼냐는 듯, 각이 살아 접혀 있는 이불 위에 가지런히 베개 두 개가.

그날 밤은 하늘에 초승달이 떴다. 주먹을 하도 꽉 쥐고 있어서 그런지, 손바닥이 패였다. 손톱 자국이, 초승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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