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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뷔 시한부

우주 배영 2016. 12. 14. 23:34

내가 시한부래. 삶에 대한 미련이 많았다. 해 보고 싶은 게 산더미인데. 여자 친구도 사귀어 봐야 하는데.

병원에 갇혀 살았다. 또래 남자애가 들어왔다. 손목을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 들어도 뻔했다. 나 같은 사람이 있는데, 어째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걸까.

씨발,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내가 언제 살고 싶다고 했나, 내가 언제 살려 달라고 했나. 뒈져 버리고 싶다. 그래도 갑자기 멀쩡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새로 들어온 남자애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애써 못 본 척한다.

곱상하게 생겨서, 목소리는 따로 논다. 조막만 한 얼굴 반을 차지하는 코가, 그 코의 점이 매력적이다. 코의 점을 보고 있자니, 위에 예쁘게 찢어진 눈에도 눈길이 간다. 그래서 뚫어져라 봤다. 사내에게 홀린 것 같았다.

김태형은 애 같다. 솔직히 애인지, 개인지 헷갈린다. 개, 라기보다 강아지 쪽이 어울리지. 그래서 그 조그마한 머리통을 쓰다듬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머리로, 무슨 안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인지. 무슨 이유로 밤마다 앓으면서 뒤척이는 건지, 그럴 때마다 껴안아 줬다. 뒷목을 살살 만져 줬다. 어느 날은 고백을 했다, 나한테. 그래서 김태형의 턱을 들고 확인했다. 눈을 감고 있었다. 한낱 잠꼬대일 뿐이구나, 작게 실망을 했다.

병원에서 탈출했다. 아무도 모르게. 무작정 길이 난 곳으로 걸었더니 한적한 바다가 나왔다. 해풍에 김태형이 휘청였다. 그대로 날아갈 것 같아서 허리를 내 품으로 끌어안았다. 매가리 없이 안기더니 슬슬 가슴팍에 얼굴을 부빈다. 이름을 불렀다. 나도 모르게,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생각이 일었는지 김태형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맞물렸다. 참을 수 없어서 쇄골도 마구 깨물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하필, 김태형을 알고 난 뒤에.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게 꼭 자장가로 들렸었는데. 내가 힘들어할 때, 자기가 이름을 부르면 얼마 안 가서 안정을 되찾는다고. 대답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기운이 없어서 그저 깍지를 꼈다. 김태형은 오늘도 잠을 설친다.

김태형이 잠들어서 다행이다. 깨어 있었다면, 여기까지 쫓아왔으려나.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어김없이 내 이름을 불러 줬더라면, 이것은 수없는 고비 중 하나가 되었을까. 김태형이 없는 방이다. 죽는다는 사실보다 김태형의 마지막 모습을 제대로 눈에 담지 못하고 왔다는 게 더 괴로웠다.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내가 없는 현실을 각오 없이 받아들여야만 할 김태형이, 그런 여리고 여린 태형이가, 걱정됐다. 심정을 말하자면, 매일을 눈물로 물들이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고, 김태형이 뒤이어 나를 따라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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