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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슙 삼각철1

우주 배영 2017. 9. 24. 00:49



아가미가 없는 대신, 뚫린 등에 깊은 또 하나의 심해로 큰 한숨을 뱉는 고래. 사람도 크고 많은 한숨을 쉬면서 심장에 조금씩, 조금씩 망연한 블랙홀이 나고 말았겠지. 통증, 괴롬을 모두 탄내 나는 블랙홀에 내던질 수 있다면, 사랑의 그리움까지도.

모닝콜이 시끄럽게 소리 지르면 아침이 밝았다는 걸 체감한다. 손길이 닿을 때까지 우는 것을 무심하게 꺼 두고, 눈을 감으면서 귀마저 닫았는지, 미동도 없는 태형을 바라보다 이불을 잘 덮어 주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새벽 같은 아침은 몹시 서늘해서, 어제도 했던 같은 고민을 한다. 하복을 입어야 하나, 춘추복을 입어야 하나. 인스턴트로 차린 식사를 해치우고, 더 자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 멍한 몸으로 양치를 하고, 부스스한 머리를 물로 빗고도 결정을 내리지 못해 결국 코카콜라를 하고 만다. 정국이 학교 갈 준비로 부산한데도 태형은 뒤척임 한 번 없이 곤히 잠만 잘 잔다. 나오자마자 따사로운 햇살, 코카콜라 실패다. 이런 게 바로 마피아의 법칙, 아니, 머피의 법칙. 얌전히 하복이나 입을걸. 낯가림이라는 밑바탕이 깔려 있어 2학기 끝을 달림에도 이렇다 할 친구가 없다. 집에서 나한테 하는 것만큼만 해 봐라, 전정국. 끼리끼리 뭉쳐 노는 학우들을 볼 때마다 태형의 말이 귓가에 윙윙 운다. 뭐, 내가 집에서는 어떻다고. 자연스레 책상에 팔을 포개고 엎드리는 몸. 성적이 고스란히 반영된 자리 배정인 이유여서인가, 유독 뒷자리가 소란스러워 쉽게 잠들지도 못한다. 물론 정국은 맨 뒤에서도 끝자리. 어떠한 동기 부여를 받지 못해서, 펜 드는 것보다 마이크를 잡는 게 더 좋아서, 노래만큼 재미있지 않아서? 사실 칠판만 보면 머리가 어지러워서. 옆자리는 조회 시작 전까지 비어 있다가, 종 칠 무렵 타이밍 좋게 세이프. 정국은 여전히 어찌 자신보다 공부를 못할 수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고리타분함을 형상화하면 담임일 터, 조회 흐름을 끊으면 피곤해지는 건 본인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어 유일하게, 아, 학교에서 제일 성격 더럽기로 말 많은 문학 시간을 제외하고. 적막하다. 이 적막함을 뒷문이 열리는 드르륵 소리가 깨면 아, 복학생 형이구나. 엎드린 몸을 뒤척거린다. 또 귀에 낮게 속삭이지. 전정국, 형 왔다. 나이는 찼지만, 애 같은 건 그대로인지, 그러니까, 학생 신분이면서 가방도 없는 주제에 왜 친한 척하는지 모르겠다고. 정규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늘 무기처럼 쥐고 있는 나무 회초리 끝으로 복학생 형을 가리킨다. 민윤기, 머리털은 왜 그 꼴이냐. 따라 나와. 그러고 보니 파워에이드로 머리카락을 물들인 모양이다. 음료를 김장할 때 쓰는 대야에 콸콸 붓는 민윤기를 잠시 상상했다. 난 저런 색을 살면서 본 적이 없다. 혼날 걸 뻔히 알면서도 실실 웃는 얼굴로 일어나는 윤기를 보고 혀를 찼다. 아무래도 나이는 똥꼬로 먹은 것 같다. 노란색, 분홍색, 밝은 갈색은ㅡ이 학교에선 눈에 튀지만ㅡ양반이다. 한참 전에 했던 빨간 머리는 그럭저럭 넘어가고, 민, 민트색? 기함을 했다지. 어때, 색 예쁘게 잘 나오지 않았냐. 예, 그러네요. 마지못한 긍정의 대답을 굳이 듣겠다고 앞에서 머리를 들이밀며 알짱거렸던 것도 벌써 몇 달 전. 불같은 담임이 이를 보이며 웃는 것도, 저 복학생 형 아니면 볼 수도 없다. 일이 년 더 봤다고 저렇게 친한가. 윤기의 친화력? 여하튼, 들이댐은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타인에게 살가워 본 적이 없어서 더. 물론 누구에게는 예외다. 태형에게도 언젠가 말을 꺼내 본 적이 있다. 형, 우리 반에 복학생이 있는데, 복학생? 잘생겼어? 좀, 들어 보라구요. 너보다 잘생긴 사람은 못 봤다는 능글맞은 뒷말에 귓바퀴가 빨갛게 물들었었다. 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여유롭게 반으로 들어오고는, 흑발인 정국의 뒷머리를 슬슬 만진다. 쳐내기도 하찮아서, 가만히 뒀더니 굳게 다문 입이 열린다.

“검정색 질리지도 않냐? 네 머리 볼 때마다 내 가슴도 까맣게 타들어가.”

“무슨, 그러는 형 머리는 어머니 눈물로 염색된 거예요?”

“못하는 말이 없네, 아주. 울 엄마가 왜, 인마.”

여전히 자신 머리도 아니면서 손가락으로 비비 꼬면서 말한다. 너 친구 없는 거 다 알아. 학교 끝나고 어디 좀 가자. 그래서 갔다. 끌려갔다. 미용실로.

아침에 홀랑 먹어 버리고 갈 줄 알았던 먹다 남긴 치킨 몇 조각과 둘의 최애 반찬인 3분 햄버그스테이크가 냉장고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짜식, 먹으라고 남겨 둔 것 봐라. 예쁜 짓만 하고 간 급식이 기특해서 안 하던 설거지도 다 했다. 오후 4시가 다 돼서 꾸물꾸물 일어나 배를 든든히 채우고 샤워하던 중, 현관 열리는 소리에 씻다 말고 욕실 문을 활짝 열었다. 정국...! 먹을 것을 챙겨 주고 간 것에 대해 잔뜩 예뻐해 주려고 했더니, 웬 날티 나는 양아치가 귀가했다. 몸에서 거품이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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