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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슙 삼각철2

우주 배영 2017. 9. 24. 16:17



​ 아, 어.... 쩡 굳은 태형의 반응은 곧 정국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푸석거림이 남은 뒤통수를 멀뚱히 쓸었다. 민 지 얼마 안 되어서 손바닥이 까끌했다. 완벽한 갈빛이다. 너, 언놈이... 머리를 그따위로 만들었어. 소중한 흑발! 어디 갔냐고! 파워 쿨톤에 찰떡이던 흑발이! 어디로 갔냐고! 분개하는 태형을 욕실로 겨우 밀어 넣었고, 신발장에 거울을 올려 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미신에 다이소에서 단돈 1,000원을 지불하고 샀던 조그마한 거울로 요리조리 둘러보았다. 아직도 그런 미신을 믿어요? 타박할 때는 언제고, 가장 요긴하게 쓰고 있는 건 정국이다. 본인마저 어색함에 몸서리를 치고 만다. 쩡구아, 금방 끝나. 야, 멍청아, 너 부른다고 뒤를 보면 어떻게 해. 하얀 이발소 가운을 몸 앞에 두르고 경직된 채 왜곡되어 보이는 세로로 긴 거울에 시선 고정을 했다. 하얗게 머리가 쇤 할아버지께서, 저런 색을 만들어내셨다니. 입구에는 벽면에 붙어 있는 19금 잡지 쪼가리들과 다 뜯어진 가죽 소파에 다리를 꼬고 휴대 전화를 보고 있는 윤기, 잘려나간 머리카락 뭉텅이가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각종 약 냄새들이 코를 찔렀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영 몸 둘 바를 모르겠는 낯선 풍경. 시작 전에 뒷머리를 다듬어 주시겠다기에 땅을 보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던 게 미용실이었는데, 최근 들어 정신없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 일주일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어렵사리 들여 놓은 습관일지라도, 유난히 깔끔 떠는 성격일지라도. 별나게 머리가 금방 기는 태형과 동행하고는 했는데,ㅡ정국이 힘으로 끌고 간다ㅡ어젯밤 보니 앞머리가 벌써 눈을 가리고 뒷목을 덮을 만큼 덥수룩하더라. 먹는 게 다 머리카락으로 가는가 보다. 위이잉 무서운 소리를 내는 바리깡이 목 접히는 경계를 슥 훑고 가면, 이발소 가운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까만 머리카락.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머리카락이 옷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등이 따끔거린다. 짧디 짧은 가시 같은 것이 콕콕 아프게 한다. 집에 가면 교복을 한바탕 털어야 되겠구나. 물들이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돌아가기 전에는 할아버지께서 요구르트를 쥐어 주셨다. 너 참 곱게 생겼다고. 쑥스러움에 입이 열리지 않아 감사 인사 대신 가벼운 목례를 했다. 할범, 나 갈게. 오늘은 장사 접고 일찍 들어와. 손을 휘휘 흔들며 나가는 윤기를 뒤좇았다.

“뭐예요?”

“뭐가 뭐야.”

“그러니까, 친할아버지...?”

“아니, 내 진짜 할아버지는 아니고. 어쩌다.”

같이 산다고 했다. 무료할 때마다 미용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조금이지만, 어느 정도는 흉내 낼 수 있단다. 가위손이라고 불러 달라는 우스갯소리에 코웃음을 쳤다. 서 있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다리가 성치 못한 날은 대신 이발소로 나가기도 한다고. 아, 설마. 벽에 그거.... 맞아, 내가 붙여 놓은 거야. 변태가 진짜. 사내놈이 뭘 그런 걸로 부끄러워하냐? 시답지도 않은 대화를 나누며 헤어짐에 다다랐다. 내일은 너도 늦게 와라. 가방을 고쳐 매다 윤기의 말에 물음표를 달았다. 그 머리로 오면 선도부한테 잡히지. 나 간다. 집에 오니 태형에게 잡혔다. 물기는 덜 말려서 바짝 건조된 수건을 위에 얹고, 내내 믿기지 않는 듯한 넋이 빠진 얼굴로 정국의 머리를 매만졌다. 색은 예쁘게 잘 나와가지고.... 아, 앗 따가. 순간 찡그려지는 미간에 손을 답삭 잡았다. 베였나 봐. 그러게 누가 그렇게 만지고 있으래요. 길게 죽 살이 벌어졌다. 같이 살게 된 집에는 이래저래 탈 많은 태형 덕분에 온갖 구급약이 비치되어 있다. 연고와 밴드를 꺼내서 손 펴 보라고 하니 아니, 그거 말고. 뚱한 얼굴로 정국에게 투정을 한다. 이거 말고? 전혀 감이 오질 않아 절절매자 정국인 너무 귀여워. 여기 뽀뽀해 달라구. 상처 난 검지를 쭉 펴서 입가에 가져다 댔다. 뭐예요, 정말. 못 이기는 척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춘다. 됐어, 이제. 되긴 뭐가 돼요. 약 발라 주면서도 다다다 쏟는 잔소리에 안 들린다, 안 들린다. 귀를 막았다 뗐다 하는 얄미운 시늉과 눈도 꼭 감았다. 어지간히도 듣기 싫은 잔소리인지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은 것 같아, 엄한 표정을 짓고 한 말은 태형을 금세 반성케 했다. 서로를 귀여워하는 둘이니, 오래가지도 않았고. 같은 침대에 눕고도 태형은 한참이나 머리를 만지다가 잠들었다. 잠꼬대들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나와서, 하루 종일 태형이 했던 것처럼 동글동글 밤톨 같은 머리를 큰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자는 중에도 손길에 반응해 품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에 정국은 그 새벽, 바지춤을 잡고 화장실로 달려갔다는 후문이. 학생답게라는 말에 걸맞게 하는 건 없어도 꽤나 착실한 학생인지라 출석부에 흠 하나 없는 정국인데, 난생 처음, 게다가 고의로 지각을 하게 생겼다. 사실 선도부에게 잡혀 머리가 밀려도 상관은 없지만, 마침 머리도 밝게 물들였겠다 짝꿍인 복학생 형이 밥 먹듯이 하는 일탈 자체가 상당한 매혹으로 다가온 셈이다. 아침잠 많은 태형은 여전히 단잠에 빠져 있고, 학교 갈 준비를 서두르지 않아도 돼서일까.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안다고,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때워야 하나 멍하게 아까운 시간만 하릴없이 보냈다. 가까워지는 등교 시간이 정국을 여간 압박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다른 날보다 급박하고도 급박한 아침을 맞이했다. 지각도 하지 않았고. 등굣길을 우당탕 달리다가 윤기를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같이 가자는 소리도 쌩 무시하고 내달리니 선도부가 거기 갈색 머리! 하며 잡는 것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헉헉, 가방을 품에 안고 교실로 무사히(?) 들어오니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렇게 관심 쏟는 분위기도 아닌데,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정국은 실로 처음이고, 아무래도 염색 머리가 시선을 끌기에 적합했지. 엉망이 됐을 게 뻔한 머리를 손으로 대충 털고 하복 입길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밤사이에 또 길었을 태형의 머리가 뇌릴 스치고 지났다. 오늘이야말로 꼭 데리고 갈 테다. 생각을 마치자 무섭게 열리는 뒷문. 윤기가 왔다. 참, 미용 가위를 다룰 줄 안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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