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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슙 삼각철3

우주 배영 2017. 9. 26. 00:04



누구한테 쫓기는 줄 알았다. 용케 안 잡혔더라, 뒤에서 보는데 얼마나 웃겼는지 너는 모르지? 역시나 몸만 덜렁 와서는 말만 많다. 이야, 그나저나 색 존나 잘 빠졌네.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시디? 벅찬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같이 안 살아요. 아.... 짧은 탄식이 귀에 꽂혀 픽 웃었다. 뭘 웃어, 미안하라고 그런 거냐? 아니요, 어제 형도 할아버지 이야기해 줬으니까요. 답지 않게 화기애애해질 때쯤 늘 윤기를 겨냥하던 회초리 끝이 정국을 가리켰다. 까딱. 야, 잘 갔다 와라. 다리 꼬는 버릇은 어디 안 가고, 태평하게 자리에 앉아 정국에게 손을 흔든다. 조회 시간은 끝났지만, 교실에 남아 복작복작 떠들던 아이들이 교탁 앞에 선 정국을 힐끔 쳐다보았다. 예상보다 담임의 호통은 들을 만했다. 잔소리를 들으며 집에 있을 태형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물론 그만큼 정신이 분산되어 어느 누가 자신을 아니꼽게 쳐다보는지까지도 느껴졌다. 소문이라고 할까. 7반 복학생 양아치 형이랑 전정국이 붙어 다닌다고, 한 학년 선배들까지 친히 행차하셨다. 대부분 그래서 전정국이 누구인데? 하는 분위기였지만. 남녀 분반인 학교의 반응은 극명히 갈렸다. 그, 잘생긴 애 있잖아. 잘생긴 애랑 잘생긴 복학생 오빠. 맞다, 나 걔 노래 부르는 거 봤다? 뭐야, 기획사 연습생이래? 그건 잘 모르겠고.... 아마 근처 대학교 축제에서 등 떠민 태형 덕에 무대 위로 올라갔던 걸 본 거겠지.

몇 살이냐는 물음을 시작으로 신상이 다 털렸더랬다. 형, 저 사람들 앞에서 노래 못 부르는 거 알잖아요. 방금 누가 무대에 올라갔다 왔지? 초청 가수 온 줄 알았어, 나는. 마침 앞 주점에서 파는 양꼬치 한 묶음을 사서 정국의 입에 억지로 쑤셔넣었다. 네 노래는 나만 듣기에 아까워. 세상 사람들 전부 들어야 한다니까. 그러더니 확 주저앉고서 시멘트 바닥에 말을 건다, 어때, 개미야. 너도 좋았지? 태형의 행동에 킥킥 웃으며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일으켰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요, 저는 형한테만 노래해도 돼요. 무슨 그런 로맨틱한 소리를 하고 그래, 두근거리게. 그때 처음으로 입을 댔다, 술에. 교복 입을 때는 보이지 않던 짙은 눈썹과 갈라진 턱이 눈에 튀어서, 더군다나 대학교 주점은 나이가 어떻게 되든 팔아 주기만 하면 장땡이라. 그런데 정구가, 양꼬치는 그냥 먹으면 안 된다? 손에 쥐어진 꼬치를 야만스럽게 뜯어먹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머, 먹으면 안 돼요? 어, 술이랑 먹어야 돼. 저 아직 미성년자...! 손목을 붙잡힌 채, 하필이면 호객 행위에 열심인 파전 주점에 딱 걸리고 말았다. 정국의 힘으로 당연히 뿌리칠 수 있었지만, 뭐. 술을 가르쳐 주겠다면서, 바나나 어쩌고 술병을 얼굴 옆에 들고 볼때기는 잔뜩 익어서 바나나 먹으면, 나한테 반하나? 주정을 부리는 태형에 또 한 번 넘어갔다. 한 술 더 떠서 한 자루 훔쳐온 것 같은 고깃집 의자에 삐딱하게 다리를 올리고, 정국이 먹기 좋게 찢어 주는 파전을 우적우적 씹어 먹는 사태가 발생했다. 여기 한 병 더여. 빈 병을 머리 위로 들고 팔랑팔랑 흔드는데, 빈 병인 줄 알았건만 한 뼘 만큼이나 남아 있던 내용물이 머리 위로 콸콸 쏟아졌다. 형, 이제 그만 마셔요! 팔을 잡고 말리던 정국까지 정적. 본의 아니게 알코올로 샤워를 하고 만 태형은 얼굴로까지 주르륵 흐르는 것을 손으로 대충 훔쳐냈다. 국아, 형 한 병 더....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세게 흔들던 병을 빼앗듯이 채서 태형을 일으켰다. 내가 못살겠다.... 집에 가요, 이제. 우리 많이 놀았다. 가는 길 내내 태형에게서는 역겨우리만치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고, 몸마저 뜻대로 가누지 못하니 한껏 중심을 싣고 기대 가느라 정국은 꽤 애를 먹었다. 종잇장 같은 몸이라고 해도 힘이 다 빠진 성인 남자를 지탱하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거기다 냄새만 맡아도 취한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집까지와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망정이다. 대학로를 나서면서 잡아 주지 않아도 스스로 갈 수 있다고 고집을 피우는 통에 하는 수 없이 뒀더니,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전봇대에 들이박질 않나, 미동 없는 땅인데 저 혼자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하질 않나.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허리에 팔을 감아 버렸다. 이 형은 먹을수록 더 빠지는 체질이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과히 마른 허리에 도대체 어디까지 팔을 감아서 끌어안아야 될지 가늠해 보기도 하고, 슬슬 토기가 올라오는 모양이다. 가다 멈추고를 반복하는 등을 토닥이며 게우고 갈래요? 다정스레 묻기도 하고. 고개를 설설 저을 때는 언제고, 진이 빠져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로 웅얼댄다. 가슴 부근에서만 웅웅 울리는 소리. 잠시 이게 뛰는 심장 소리인지, 태형의 웅얼댐인지 의심해 보아야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도카니 서서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을 더 줄 뿐이었다. 이대로는 내일이 되어도 이곳 그대로일까 봐, 등을 보이고 앞에 쭈그려 앉았다. 업혀요, 형 힘들잖아. 응? 으응, 응. 고개를 까딱이고는 해롱해롱 취한 걸음으로 등까지 다가와서 픽 쓰러졌다. 형...? 잠든 거 아니죠? 잠든 건 아니었고, 우우웩 하는 소리와 함께 등이 흠뻑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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