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가 없는 대신, 뚫린 등에 깊은 또 하나의 심해로 큰 한숨을 뱉는 고래. 사람도 크고 많은 한숨을 쉬면서 심장에 조금씩, 조금씩 망연한 블랙홀이 나고 말았겠지. 통증, 괴롬을 모두 탄내 나는 블랙홀에 내던질 수 있다면, 사랑의 그리움까지도. 모닝콜이 시끄럽게 소리 지르면 아침이 밝았다는 걸 체감한다. 손길이 닿을 때까지 우는 것을 무심하게 꺼 두고, 눈을 감으면서 귀마저 닫았는지, 미동도 없는 태형을 바라보다 이불을 잘 덮어 주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새벽 같은 아침은 몹시 서늘해서, 어제도 했던 같은 고민을 한다. 하복을 입어야 하나, 춘추복을 입어야 하나. 인스턴트로 차린 식사를 해치우고, 더 자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 멍한 몸으로 양치를 하고, 부스스한 머리를 물로 빗고도..
분식집, 망한 옷가게, 생선가게, 반찬가게 등등. 분식집 앞에는 피아노 학원이 있고, 그 위로 몇 걸음 움직이면 태권도장이 있다. 태형은 운동이 끝나면 땀에 푹 절어서 피아노 학원 입구에 크게 자리한 피아노 구경을 하러 가고는 한다. 면밀히 말하자면, 큰 피아노가 아닌 학원생인 윤기를 보러 가는 거고. 태권도장에 다니건, 피아노 학원에 다니건 또래들이 우르르 몰리는 분식집에서 윤기를 처음 보았다. 하얀색 교복 니트가 유난히 잘 어울려서, 교복 차림에 샛노랗게 탈색한 머리가 퍽 잘 어울려서 넋을 놓고 떡을 먹다가 눈이 마주쳤다. 잠시였지만 저를 보고 질색하는 얼굴도 잘생겨서, 생면부지인 윤기에게 반했다. 나갈 쯤 거울을 보니 입가에는 양념이 다 번져서는, 더 가관인 건 이에 고춧가루가 꼈더라. 아, 왜..
널 종교로 삼고 싶어. 네 눈빛이 교리가 되고, 입맞춤이 세례가 될 순 없을까. 태형아, 헤어지자. 그래서 부른 거야. 약지를 매만지다가, 딱 들어맞던 반지를 잡아 뺀다. 꽉 쥔 주먹을 가지고 가서 손바닥에 칠이 벗겨지고 만 반지를 쥐어 준다. 이거는, 다른 사람이랑 해. 알겠지? 여느 때처럼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이고 자리를 뜬다. 만남이 없는 이별이다. 반지를 쥔 채로, 공허와 미련이 남아 눈으로 지민을 쫓는다. 옅게 선팅 되어 있는 차창으로 낯선 여자가 보인다. 닳고 닳은 것은 지민과 맞춘 반지가 아니고, 태형이었으리라. 밟고 서 있는 땅이, 푹푹 빠진다. 몸이 무거워서, 아니, 모든 무게를 마음에 쏟고 있느라. 한 방울, 두 방울 회색 아스팔트 바닥이 짙어진다. 눈물인 줄 알았건만, 정수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