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 위에 올린 얼음 수건, 붉게 춤추는 심장에도 올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녹슨 피 흘리며 너덜거리는 살점은 흘러간 어느 것에 베였는가, 욕심도 많아 통째로 앗아가는 급한 밤 폭풍을 뒤따라 채찍질하는 것은 누구이며, 폭풍 몰아치는 밤하늘 하얀빛으로 땜질한 별 경계 잃고 와르르 쏟아질까 아래서 어깨로 괴 희생하는 것은 누구인지. 금 부스러기 별 한 조각 야금야금 갉아 먹힌 기억과 엉켜 들날린다. 비행처럼 보이지만 추락하는 것. 신발 가지런히 벗어 폭풍 안으로 낮게, 낮게 자세를 숙이고 몸 맡긴다. 신발을 벗고, 발목을 벗고, 잘린 단면으로 바람 타고 걷는다. 온갖 천체 휩쓴 오뉴월 폭풍이 만든 회오리에는 서쪽 성긴 저녁노을 화르륵 달 겨우 밀어내며 버티고, 바닥에 오롯이 귀 대고 밤길, 물길 소리 ..
알아, 알아. 나는 당신에 의해 태어난 기계라는걸. 사는 게 아닌 작동. 죽는 게 아닌 고장. 당신 이름으로 세워진 건물, 컨베이어 벨트가 멈췄다. 손에는 새하얀 장갑, 걸치고 있는 가운도. 모두 새하얗다. 달랑거리는 조각난 정신마저. 어쩌면 나보다 더 기계 같은, 감정의 움직임이 없는 당신. 이런 심술스러운 패악을 부려도 역으로 무안해질 만큼 무반응이다. 조만간은 목에 걸고 다니는 카드를 숨겨야겠다. 그런다면 나를 만나러 오지 못할까. 어떠한 수단으로든 보러 올까, 아버지, 아니, 남준 형은. 호칭에 대한 혼선은 끊임없다. 당신은 나를 V, 라고 깔끔한 발음을 하지만 V인 나는 여전히. 가르침도 받지 않았다. 왜 입력해 놓지 않았는지, 불편하게. 잘게 부린 투정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