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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

우주 배영 2017. 2. 11. 21:10





장전할 줄도 모르는 권총을 가지고 다닌다. 그 자체로 드는 위화감 때문에, 어린애들 호루라기처럼 목에 걸고 다니는 편이 훨씬 나았을걸. 그래도 김태형이 유일하게 총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다. 총 돌리기. 내 손 위에서 자유자재로 굴려지는 총을 보고 눈을 빛낸 게 시초였다. 무게가 꽤 나가는 총으로 온종일 손장난을 치더니, 뽀르르 나에게 와서 이것 좀 봐 달라고 떼를 썼다. 나왔다, 집중하는 입술. 다음부터는 무리가 가지 않도록 22구경의 권총을 테이블에 뒀다. 슬쩍 쥐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은, 작고 가늘은 손목이었기에. 정국아, 이거 네가 둔 거지? 조용히 넘어갈 줄을 모른다, 김태형.

거리는 이미 쓰레기들로 넘쳐나 숨이 막혔다. 트이지 않는 시야와 썩은내로. 상대적으로 이목구비가 붙어 있는 쓰레기, 아예 절단 난 채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쓰레기, 마구잡이로 뒤엉켜 있는 쓰레기들. 형은 가끔 하는 외출에, 두 손가락으로 코를 틀어막고 다녔다. 그 행동이 너무, 형 같아서 오랜만에 배를 잡고 웃는다. 단순히 코 막는 것으로는 안 됐을 건데, 우리가 멀쩡하지 않다는 증거겠지. 외출은, 정말 가끔이다. 이미 다 타 버려 볼품없는, 흉측하게 그을린 집에 들어박힌 이유다. 이 역유토피아에 그나마 몸을 편히 뉘일 수 있고, 여유를 최대로 부릴 수 있은 독일무이한 공간. 뭐, 김태형이 호흡하며 발 붙이고 서 있는 곳, 그곳이 유토피아지.

귀여운 소리를 했다. 집 안에서 창문으로 바깥을 구경하면 매일매일 축제고, 카니발 같다고 한다. 소파를 창가에 두길 잘했다. 창문에 볼을 바짝 붙이고, 앙 다물러져 있던 입이 벌어지는지도 모를 것이다. 시가를 휩쓰는 불길, 그리고 탄약과 머리통 터지는 소리. 형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라 수긍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형, 내가 당부하고 싶은 게 있어요. 모든 카니발의 주최는 내가 할 테니, 형은 멀찍이 작은 돔에서 지켜만 봐요.

다 뜯어진 소파에서 무료한 얼굴로, 무료하게 다리를 달랑거린다. 그리고 보이는 새까만 발바닥. 무서울 정도로 이곳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날씨라는 개념도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오늘처럼 맑개 갠 날에는 빨래를 널어야 한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형 말처럼 다른 때보다 먹구름도 덜 끼고, 먼지바람도 덜 분다. 해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아니었으면 자주 빨래할 일도 없을 텐데, 옷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건 항상 나다. 쌕쌕, 조용하고 깊은 숨을 내쉬며 자는 형을 당장 안고 싶은 것을 억누르지 않아도 될 터이다. 그전에 몸을 깨끗하게 닦아내야지.

누구들처럼 떼로 다니지 않았고, 때에 따라 눈치껏 행동하는 게 소신이다. 독단적, 좆대로 구는 게 제일 잘 맞았다. 이런 소리를 늘어놓아 봤자, 내 잽싼 눈치를 어디에 대고 탓하겠느냐만은. 더 이상 질질 끌 수 없을 것 같아 형에게 물었다. 여기 올 때 가지고 온 짐 가방, 어디에 뒀는지. 우물쭈물 대답을 피하는 형은, 뭘 알아서 그랬던 걸까.

그을린 집 앞, 알코올이 제일 잘 보존되어 있는 바. 폭주하는 도시에서 멀쩡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신통방통한 바. 술에 약한 형은 도수 낮은 칵테일만을 주야장천 마셔댔다. 상기된 얼굴, 볼따구에는 귀여운 홍조를 달았다. 내 다리에 맨발을 비비적거렸다. 짐은 다 챙겼냐고 묻자, 이내 품으로 풀썩 쓰러지더니 금새 티셔츠가 축축하게 젖어 들어 간다. 혼자서는 가기 싫다고 엉엉 울어재낀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침부터 아침까지 밤새웠고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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