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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 罪責感

우주 배영 2017. 2. 25. 20:57




전정국에게 나는, 끽해 봐야 죽은 애인을 대신한 닮은 사람. 발버둥치고, 죽기 살기로 다리에 매달려도 딱 거기까지다. 추적추적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고, 흙탕물에 구르며 비참해질수록 순정은 빛을 냈다. 김태형의 순정은, 빛내다 못해 발화한다.

호모 포비아였으므로, 철저하게 숨겼다. 여자 친구를 사귀는 둥, 알아챌 수 없도록 가장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목젖이 타는 것 같아서. 어, 자격지심에. 그럴 때마다 전정국은 응원해 줬고, 투정은 덤이었다. 왜 형만 연애해요, 나랑 이어 줄 사람은 없어요? 너무하네. 너를 사랑하려면 너무해져야 했다. 내가 더럽게 치사하고, 너무해 봤자 너는 못 따라가. 얼마 안 돼서 여자 친구 생겼잖아. 너는 이미 승리자였는데, 기어코 뭉툭한 발꿈치로 작아진 나를 짓뭉갰다. 나는 그 날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전정국의 여자 친구를 저주하며. 할 수 있는 건 이게 다였다, 간접적으로 차인 내가. 애당초 군번에 무언갈 바란 것도 아니었다.

연애한다는 소식은 약과였다. 그 여자와 대면하기도 했다. 제일 친한 형이라고 들었다며 살갑게, 그러니까 친한 척을 했다. 시시각각 변했던 감정선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여자에게 신경을 쏟았더니 끝내 얹히고 말았다. 가지가지 해, 김태형. 체감상 어제 먹은 것까지 게웠던 것 같다. 전정국의 입으로 음식을 떠먹여 주는 여자의 눈빛은 그랬다. 너는 전정국 못 가져, 포기하면 편해. 사실 먹은 것만 토해낸 게 아니다. 지금까지 내 안에 침수된 전정국을 토했다. 몸이 한결 가벼운 것도 같다. 물론 남들이 욕할 바보 같은 미련에, 쫄딱 비우지는 못했다. 깡그리 한 번에 비운다면 그것대로 감당 안 될 것 같거든. 청승맞게 한참 변기 커버를 붙잡고 있었다. 전정국을 상대로 수음하는 일도 더러 있었는데, 그런 추잡스러운 짓도 그만뒀다. 알게 될 리도 없지만, 무구한 아이를 더럽히는 것 같아서.

매번 느끼는 건데요, 지금 제 여자 친구 말이에요. 형이 여자로 태어난 것 같아요. 볼 때마다 느낌이 이상하단 말이지. 나이도 같고, 생일도 이틀밖에 차이 안 나더라고요. 웃어 주기는 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잠들기 전, 밤마다 빌었던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감쪽같이 여자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어림없다는 걸 알아도, 잔상이 남을 때까지 형광등을 쳐다보았다. 형광등도 울던 밤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내 깜냥에 욕심을 냈다. 정말 비밀인데, 전정국의 여자 친구를 또 저주하고야 말았고, 다음 날, 사고가 크게 났다고 했다. 누구에게? 그 여자에게. 눈앞에서 번개가 땅에 꽂혔다. 탐내서는 안 될 것을 탐낸, 치기 어린 바람의 최후였다.

무슨 하면목으로, 장례식을 따라갔는지. 전정국에게 반드시 숨겨야만 하는 추가적 비밀, 숨기는 게 이렇게나 있어서 나는 무겁다. 머리를 무겁게 눌렀다. 어차피 죽을 사람이었다고 나를 종용했다. 끝까지 구질구질했을 뿐더러, 추악했다. 이미 이지러진 사람이었을까. 온종일 진 빠진 전정국의 손을 잡고, 안을 수 있다는 걸 하나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지금까지의 내동댕이를 당한 처절함을 위로받는 것이었다. 허전한 구석을 채울 수 있어서 좋았다. 김태형이 아닌, 죽은 여자의 이름으로 불리어도 좋았다. 그 여자로 살 수 있어서 좋았다. 혀를 뒤섞을 수 있어서 좋았으며, 타액을 나눈 후 단단한 어깨에 기대 시근덕댈 수 있어서 좋았다. 죽은 여자를 닮은 사람이 나여서 좋았다. 이대로 권태만 느끼지 말아 줘, 정국아. 실제를 깨닫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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