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민뷔

우주 배영 2017. 2. 28. 02:26





이거 ​
너무, 하이퍼 리얼리즘이네.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음악 들으면서 울고, 영화 보면서 울고, 고민 자랑 프로그램 보면서 운다. 슬픈 이야기는 다 내 일 같아서.

하나. 울고 싶다고 우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핑계거리를 만든다. 둘. 나를 투영해서 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나보다 불쌍한 사람들 천지고, 그러므로 나 정도면 불쌍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 불쌍함 자격증을 딴다면, 9급은 되지 않을까. 저기, 지구 반대편에서는 흙으로 만든 쿠키로 끼니를 때우는걸. 보통, 사랑을 시작하겠다고 해서 사랑하나? 오후 여덟 시 사십 분부터 너를 사랑할 거야. 물론 있기야 하겠지, 소수를 응원한다.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인지하는 데에도 꽤 걸린다. 금사빠 님들 제외. 그 중에서도 내가 걔를? 설마, 미쳤다고. 혹은 어떻게 해, 정말 매일 보고 싶다. 손잡고, 뽀뽀하고 싶어. 사랑인가 봐. 등등 반응도 여러 갈래로 나뉘더라. 두루뭉술하게 말했는데, 내가 친구가 없어서 잘 몰라. 그러니까, 내 반응이 그랬다고. 박지민을 좋아한다니. 그 쓰레기를. 내가 좋아 뒈지는 쓰레기랑 연애를 한다니.

아니다, 후하게 매겨서 7급 노릴 수 있을 것 같아.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사람이 고백을 받아 줬다. 그래, 그거야말로 성공한 인생이다. 하지만 나는 박지민이랑 사귀기 전부터, 하느님이 만드신 실패작이라는 걸 알았다. 인생에 박지민이 끼어 있잖아. 거하게 실패한 거다. 망했다고. 여자들 엉덩이에 중심부를 비벼대고, 술 마시며 노느라 밤새우는 줄도 모르는 쓰레기 박지민. 휴대 전화 켜 놓고 있기라도 해라, 좀. 똥줄 타는 전화가 부재중이 되어도 괜찮으니까. 그리고 나랑 있을 때는, 아무한테나 번호 주지 마. 달라고 다 주냐, 바보같이. 그거 알아? 끼리끼리 논다잖아, 그런데 네 친구들이 내가 불쌍하대. 오죽하면 그랬겠느냐고. 네 새끼들이 돌려 먹으려고 했던 나를. 등신 중 상등신이라고 욕먹어도, 할 말 없다. 아, 생각해 보니 어이없네. 왜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 오냐? 박지민을 좋아하는 게 죄라면 나는 사형감이다, 씨발.

이쯤 되면 말할 타이밍인 것 같다. 어디를 보고 그렇게 좋아하는지. 나도 남들 만큼 백날 천 날 생각해 보는 건데, 모르겠는 건 여전하다. 첫인상, 가장 그럴싸한 이유다. 나에게는 가벼운 발작 증세가 있다.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겠지만. 평상시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또래들이 다니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이게, 몰랐는데 나이 먹을수록 심해지더라. 여하튼 어머니는 홈스쿨링을 원하셨었는데, 말 좀 들을걸 그랬지. 불효자 새끼. 내 업보다. 뭐, 첫 단추는 그런대로 잘 끼웠었다. 몇 번째 단추부터 삐뚜름하게 끼웠으려나, 세 번째? 입학한 지 얼마 안 돼서, 등굣길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말았다. 눈은 흰자위를 드러냈을 게 뻔하고, 괴이하게 뒤틀리는 몸을 보고 충격받은 애들은 그 이후로 나를 피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것처럼. 특히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애들이. 소문은 정말 빠르지, 나는 생전 본 적도 없는 새끼, 아니, 친구들이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물론 손끝은 나를 향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기분, 아는 사람 별로 없을 텐데... 존나 짜릿하다. 그래서 끝도 오르는 혈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또 쓰러졌다. 스트레스 주지 말라고, 개새끼들아. 2주간 출석을 안 했다. 모든 것에 싫증이 났다. 집에 있을 때는 발작의 회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세상과 안 맞는 성향인가 봐, 내가.
오랜만의 등교였다. 교문에서부터였다. 거부 반응으로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몸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뻐기기도 지칠 때쯤, 엄마의 메시지를 받고 철근을 매단 것 같은 무거운 발을 내딛었다. 힘들면 집으로 와, 아들. 이대로 집에 가면 정말, 불효하는 게 아닐까 했다. 겨우 발걸음을 떼고 있을 때 보이는, 익숙한 등. 같은 반 박지민이었다.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박지민은 확실히 학교에서 입김이 셌기에, 나도 모르게 지레 겁을 먹었다. 눈에 띄었다가는 해코지를 당할 것 같았다. 순간 눈앞이 아득했다. 계단 난간을 붙잡았다. 앞으로 고꾸라질 뻔한, 허리를 받쳐 준 건 박지민. 언제 봤다고. 그렇게 부축을 받으며 교실로 갔다. 거북이 기어가는 것 같은 걸음에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내가 교실에 들어가고, 십 분 후에야 들어왔다. 멋있었다. 이렇게 느끼는 내가 좆같았다. 내가 기피해야 할 인간 중 하나인데, 머리로는 위험을 감지했다. 다른 의미로 가슴에서도, 비상등이 켜졌다. 거리낌없이 도와줄 줄도 몰랐고, 누구에게 도움을 받은 적도 없었다. 내가 거기에 반해서는 안 됐었는데 말이다.

훔쳐보는 것도 수백 번, 쉽사리 말 걸지 못했다.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박지민의 옆에 있는 애들, 철옹성 같았다. 따까리라고 하던가? 이름을 부르려고 하면, 미끄덩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아직까지 좌심방에 쌓여 있을걸, 그때 못 부른 박지민 세 글자. 심상치 않은 조짐이라고 느꼈나. 다음 날, 교실에 들어오니 칠판에 낙서되어 있는 박지민♥김태형. 와, 어떤 간 큰 놈인지. 가방을 벗다 말고 칠판을 응시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여기에서 어떤 행동을 보여야 하지, 발작을 해야 되는 건가. 이상한 날이다. 박지민이 늦지 않고 등교 시간에 맞춰 왔다. 힐끔 쳐다보고는, 머리채를 잡는다. 나 좋아해? 다정한 눈, 나를 울리는 눈. 나를 울리는 말. 거기에서 부정의 대답을 제때 했더라면. 피라미드 최하위, 최적의 먹잇감. 그게 나다. 걷기도 버거운 나를 도와주는 박지민, 없다. 난생처음 겪는 감정의 요동이었다. 잠재울 능력은 현저히 떨어졌고, 찔끔찔끔 새어나오던 감정은 바닥에 웅덩이를 만들어 냈으며 이내 고여서 썩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네가 오물을 쌓아 장식한다.
​​첫 섹스을 모두가 보는 가운데에서 한 것도, 가슴팍으로 생리대가 날아와도 아무렇지 않았다. 견디지 못하는 몸을 보건실에 뉘였을 때, 커튼을 젖히고 비소를 흘리는 남자애들을 마주했을 때도 괜찮았다. 네가 모든 상황을 주도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게, 그게 그렇게 저릿했어. 네가 왜 고백을 안 깠는지, 속내가 다 보였는데도 만들어진 다정한 눈에 껌뻑 죽고 만 것도 나다. 내일 4주년이니까, 하나만 부탁할게. 내가 준 반지는 좀 하고 다녀라.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