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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뷔 火刑

우주 배영 2017. 3. 18. 21:10




우리의 온도차는 가끔 나를 당황시킬 때가 있다.

김태형은 핫초코를 마신다. 나는 겨울에도 냉수를 마신다. 단내를 폴폴 풍기는 핫초코, 퍽 잘 어울리지. 나는 물을 끓이던 중, 무른 수증기를 정통으로 맞으며 골똘히 생각해 본다. 김태형을 녹이면 여름이 나왔다. 그렇게나 뜨거운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내가 차가운 사람이 아닌데도 김태형의 독보적 뜨거움에, 제풀로 차갑게 식었다. 그래야만 적절한 온도로 김태형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세 번째 눈으로 보아야 최고의 궁합이라는 게, 나는 그게 조금 아쉽다. 사랑에서의 을이었다.

언제나 뒤에 서서 그림자를 밟았다. 같은 위치에 서는 법은 없다. 나는 을이고, 김태형은 윤채가 돌았다. 사실은 기가 죽은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재가 되는 것을 가능케했고, 그 요요연연함에 분신하는 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고혹에 심취되지도 못했다. 복에 겨운 놈, 질리도록 들었던 말. 김태형은 내 빛인데, 나를 검게 만들어서 빛나고는 했다. 멀뚱히 머리를 긁적이는 게 다였다. 어는점 녹는점이 같아져서 끓고 어는 걸 동시에 할 수 있으면 좋을 거라고, 다른 이에게 선물 받은 향수를 손목에 바르며 말한다. 어디 가? 아는 형이 휴가를 나와서. 나도 알고 있다. 미친 게임이라는 걸. 나에게 관통당하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닐까. 무감각해지는 쪽을 택했다. 연연할 수 없기에, 이제 알았다. 보완 관계가 아닌, 나는 찬연한 뜨거움을 식히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텅 빈 마음속에 비집고 들어가는 뜨거움을. 그러므로 내 마음을 비워 둔다.

[이 형이 나 ㄷㄸㅏ먹으려고 한다? 나 데리ㅣ러 와야지] 어찌 이겨내려고, 뜨거운 김태형을 안을 생각을 했을까. 향수를 맡았다. 귀로 맡고, 눈으로 맡으니 흔적 끝에는 김태형이 있었다. 그래, 나는 정해진 한쪽 방향으로밖에 움직이지 못했다. 결정은 내가 하는 게 아니었다. 남자는 입맛을 다셨다. 몸도 가누지 못하는 김태형을, 넘겨받았다. 취한 혀는, 멀쩡하지만은 않은 나를 덩달아 취하게 했다. 뜻하지 않은 키스를 선보였다. 주량보다 과하게 잔을 받은 건지. 퇴락한 의도였을 거다. 남에게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게 김태형인데. 골리기를 좋아한다. 놀아나는 사람을 보면 재미있다고 한다. 나는 무지 재미있는 애겠다. 취한 혀에 감도는 씁쓸, 적요한 골목에서 또 한 번 키스를 했다. 새벽 찬 공기에 깼을 법도 한데, 여전히 몽롱한 얼굴. 제발 나에게서 살아 달라는 키스였다. 고장 난 가로등은 때때로 깜빡거렸다. 가로등 밑, 어둠에 숨었다가 나타나는 김태형. 목성에서 부는 오로라는 불어도 불어도 서쪽이다. 나부끼는 김태형을, 방금까지 누워 있던 온기를 찾아볼 수 없는 침대 위로 눕혔다. 내가 뜨거웠더라면, 너의 반 만큼이라도 뜨거웠더라면. 온기가 가득한 침대에 뉘일 수 있었을 텐데. 혼자서는 잠들지 못하는 습관 덕분에,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꿈에서도 만나는 김태형. 옆자리에 두고도 아쉽나 보다. 머금고 잘게 씹는 고독, 시린 벌판에 깔린 깨진 김태형, 맨발로 걷는다. 날카롭게 베여도 아랑곳 않는다. 곪은 굳은살로 버틴다. 내 꿈의 마침표는 남다르다. 아쉬움이 남아 질질 끄는 마침표, 지익 꼬리가 긴 작대기의 모양을 한 마침표. 다음 꿈에도 꼭 방문해 줬으면 해. 더 바라자면 온전한 모습이면 좋겠어. 끝을 보지 못한 꿈이 아쉬워서,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태형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 향수와 술 냄새가 섞인 방. 거기에 김태형, 방은 활활 타올랐다. 나는 이방인처럼, 바깥에서 지켜보는 사람처럼 한데 타오르지 못했다. 그곳에서 화형에 처해지고 싶었다. 초침과 분침이 없는 시계. 셀 수 없는 사이, 무언가를 가르키지도 않았다. 부시시한 얼굴은 오로지 나만 볼 수 있는 장면. 어떻게 할까, 태형아. 세수할래? 가슴팍에 얼굴을 한껏 묻는다. 극강으로 싫다는 의사 표현이다. 너는 아찔한 절벽, 쿵, 쾅, 쿵. 내 힘으로는 절벽을 타고 올라올 수 없다. 으끄러진 손톱, 밑은 구더기가 끓었다. 꿈틀거리는 이불, 절벽에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 그대로네.

나는 둥글어졌다. 그렇게. 둥글어진 달 뒤로 갔다. 달 웅덩이에 손을 담갔다. 두 손 몽땅 담갔다. 분명하지 않은 실루엣. 이게 나의 손인지, 달의 손인지. 태형아, 내 회귀선. 타올라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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