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민뷔 立春, 韶華

우주 배영 2017. 3. 25. 21:58

​​


​​널 닮은 봄이 왔어. 봄에는 뭐부터 할 예정이야?

정신없이, 목을 조여대는 통에 크게 숨도 못 쉬고 바쁘게 살았잖아. 나는 최근에 그림에서 건축으로 전과도 했고. 그래도 그림은 쉼 없이 그리고 있어. 요즈음 서양화의 비중이 커, 네가 좋아하는 서양화. 제일 어려워하던 빛의 표현을 더 자연스럽게 그리는 연습도 하고 있어. 빛을 그림에 담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더라. 손에 익을 때까지 시간은 조금 걸릴 거야. 그러고 보니 나는, 계속해서 시간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그럴 듯한 완성작은 사진으로 남겨 두려고. 꼭. 여전히 나의 취미로 굳어 있는 유화, 몇 작은 처분했어. 받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다행이었지. 그나마 고생을 덜 수 있었어. 너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그림은, 아직 방 한 켠에 자리잡고 있어. 언제까지고 못 치우지 않을까. 덮개로 덮어 놓을 생각은 없어. 알지, 너도. 가끔 나는 그림 속에 빨려들어갈 때가 있다는 거. 너를 그리면, 너의 곁에 있을 수 있으려나?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을게.

또 치우지 못하는 것들이... 조금 많다고 할 수 있겠네. 침대 밑 엘피판들. 자기 전에 우유를 데워 마시던, 여우 일러스트가 귀엽게 프린팅되어 있는 머그컵. 걸이에 걸려 있는 머그컵을 보고 있으면 둘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외롭지 않아. 외롭지 않게 버틸 수 있어. 단일적으로 외로움을 달래려는 게 아니야. 나도 그때랑 똑같이, 똑같은 컵으로 차를 끓여 마셔. 부드러운 목 넘김에 수고하며 끓이는 차가, 이제 목구멍으로 텁텁하게 넘어가. 이유는 모르겠어. 다 큰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머리끈이 웬말이냐. 신체 일부인 머리카락이 거슬린다고, 앞머리를 넘겨 묶던 머리끈 세트. 애꿎은 나까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했던 게 기억이 나. 너는 잘 어울렸어. 귀염성 있는 얼굴이 한몫했고, 무엇보다 손놀림이 뇌리에 콕 박혀 있어. 누누이 말했지만 너는 손이 예뻐. 나랑은 비교되게. 숏컷의 여자가 머리를 묶는 것 같았어. 그만큼 위화감이 없었다, 이 말이야. 종국에는 기어이 삭발하고 싶다는 말도 입에 달고 다녔으니까, 너. 그래, 이제는 관여할 수 없다는 것 알아. 이제는... 손가락 사이사이로, 머리칼을 넘길 수도 없는걸. 미미 색칠 공부 책 세 권도 그대로야, 책장에. 맨 뒷장 여백에 내가 그림을 그리고, 네가 색을 칠한 것도.

너는 너만의 색을 칠했어, 배색과 조합은 엉망이라 할지라도. 살면서 그런 무지개를 본 적이 없거든. 건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가벼운 후회 정도는 괜찮아. 순수하게 깔린 컬러 위를, 물감 묻은 씻지도 않은 손으로 만져댄 거야. 내가. 그립지 않아. 무덤덤하게 살아. 네가 열정을 태우면서 가르쳐 준 일본어도 모조리 잊어버렸어. 그래, 일본의 봄은 어떠니. 삿포로의 봄은 어때? 시오라멘이 유명하다며. 오도리 공원의 꽃비가 장관이고, 오타루 운하는 걷기 좋다는 말을 들었어. 나는 관광 목적으로 가 보려고 해. 그리고 알려 준 음악들, 전부 잘 듣고 있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워낙 취향이 안 맞아서 안 듣고 있었는데, 새로운 걸 듣고 싶었던 것뿐이야. 플레이 리스트를 뒤져 보니 나오더라. 이 노래들까지 질리면 나는 뭘 들어야 할지, 또 같은 노래들만 지겹게 들을 거야. 음악을 들을 때는 꼭, 창문을 닫고 들어야 해. 멜로디들이 창 밖으로 날아갈까 봐. 내 손으로 잡을 수가 없어서. 세탁기를 돌리면 들리는 물소리를 빗소리로 착각할 때도 있어. 먼저 창가에 서. 같이 비 오는 것을 구경하던, 창가. 얼마 안 돼서 봄비가, 진정 비가 쏟아지는 날 그림을 그릴 예정이야. 비가 오면 장막 같던 미세먼지도 씻길 테고. 그립지 않아, 태형아. 너는 그런 존재야.


​​​すべてがかしい、える。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