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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뷔 魚缸

우주 배영 2017. 4. 15. 21:53




망망하게 깔리는 신디사이저, 언제나 왜 이렇게 신나 있는지. 얼굴은 딱히 신나 보이지도 않는다. 물기가 축축하게 스며든 도시, 사방으로 뻗친 푸시시한 머리카락. 의미 없는 허밍은 뿌리처럼 내뻗은 심장을 저릿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젖어 있는 교복 바짓단.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무난한 네이비블루가 깊이 젖어 짙은 경계선을 모양낸다. 그 밑으로 딱하게 드러난 허한 발목이 버석한 입으로 내는 허밍의 의미를 찾는다. 끝까지 차올라 흐르는데도 이토록 건조한 어항. 진한 네이비블루만이 물살에 거꾸로 물장구친다. 낡고 헐어 다 헤진 누런 벽, 엉겁결에 붙어 있는 듯한 걸이에 건조한 접이우산. 건조함은 이대로도 모자란가 보다. 가야지, 태형아. 우리 집은 여기인데, 내가 어디를 가?

계속해서 해가 저물고 있다. 장마인가, 4월의 이르기만 한 장마.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 턱도 없는 장마. 저녁나절 박명한 황혼은 어둠을 거침없이 집어삼켜, 어쩐지 어항 속 백야를 투망으로 끌어낸다. 칠이 벗겨져 흉한 외관의 스테레오 라디오를 껴안고서 발가락을 까딱거린다. 날렵한 나무 껍질에 생채기라도 날라. 엇비슷한 끝음 처리가, 어쩌면 한 곡일지도 모르겠다. 오락가락한 보일러가 규칙적으로 우렁찬 소리를 낸다. 간헐적으로 깡마른 어깨를 움찔거리게 한다. 이제는 남은 설탕도 없는데, 검지에 진득히 묻어 있는 단물. 이러니 구석에 벌레가 꼬이지. 물비린내를 풍기는 너저분히 널어 놓은 이불. 한가운데에 버려져 있다. 먼지로 뒤덮인 선풍기 뒤통수에 손바닥 얼룩이 선명하게 남는다. 나뭇가지 같은 손금. 곳곳에 가지를 쳤다. 비가 어느 정도 잦아들기까지 기다리라고 했건만. 날개로 뒤따라올 감기가 독할 텐데 말이다. 아무렴, 선선해서 좋다는 옥상 난간에 발을 내놓고 있는 것보다야.

매형께서 찾고 계시지 않을까? 상관없어, 사실 너도 나랑 있는 게 좋잖아. 괜한 데에 꼬투리를 잡아 봤자, 얼기설기 정돈 안 된 마음을 된통 들킬 것 같아 비시시 웃는 애를 따라 웃기만 했다. 욕실 문을 활짝 열고, 문턱에 걸친 낭창거리는 다리. 위에서 아래로 마른 물이 쏟아진다. 끝나지 않은 이른 장마, 가늠도 채 할 수 없다. 수북이 쌓인 먼지를 겨눈다. 하수구로 떠내려가는 탁하고 꾀죄죄한 먼지 뭉치들. 발목이 젖어오른다. 아무 생각도 안 할 수 없었다. 또 어항이다. 물고기 두 마리, 하나는 늘 꼬리를 뜯긴다. 멍청하게, 비존재하는 출구를 찾는 듯 유리벽에 대가리를 부딪히기도 하면서. 벽은 피를 흘린다. 너덜너덜, 수면 위로 잔해가 떠오르면 먹을 것인 줄 알고 냅다 달려든다. 몸의 일부였던 것을. 반쪽짜리 꼬리가 유영할 적마다 물살에 나부낀다. 그것도 꼬리라고 달려 있어서. 유리벽을 통해 미련한 물고기와 맞닿는 시선. 유리는 유리고, 보이는 대로 절대 나아갈 수 없다.

완벽히 바싹 말려야 했다. 그나마 볕이 들어오는 창가에 선풍기와 부품을 세워 둔다. 뚝, 뚝. 이불을 잡아끌고 흥건한 바닥을 얼렁뚱땅 닦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가방을 죄다 탈탈 털었다. 온몸으로 비를 맞아, 몽땅 물을 먹은 교과서. 낱낱이 페이지마다 울렁이는 게, 꼭 겹겹이 파도가 치는 것 같다. 너덜거리는 꼬리, 뒤꽁무니를 쫓는 물고기의 환영. 푹신하게 꺼지는 매트리스. 나 바닥에서 못 자, 알잖아. 아, 그랬었지. 군말 않고 자리를 비킨다. 나직한 바닥에서, 매트리스 위로 턱을 괴더니, 혼자서도 못 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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