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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뷔

우주 배영 2017. 4. 29. 21:58



허다히 들어오는 해가 내쏘는 일광에 직면하는 자리, 교실 창가에 작은 화분 두 개. 크기가 얼마나 조그마하느냐면, 손바닥 위 균형을 유지한 채 우뚝 세울 수 있다. 정성을 쏟지만 별개로 작은 것에 대해 주저가 많다. 작은 것 앞에 더 작아지고, 나약해진다. 작은 화분에 비교하면 거대한 손이 속뜻과 달리 나가 해칠까 봐, 망가뜨릴까 봐. 화분, 조그마한 강아지, 그리고 자잘한 감정. 번번이 주관적인 무기가 될 걱정스러운 손을 등 뒤로 감추고 다니는 게 버릇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따갑고 날카로운 언사로 염통을 쿡쿡 쑤시는 것처럼, 길쭉하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눈알이든 푹 찌르는 망상을 하고는 한다. 차라리 짝사랑 같은, 담고 있기도 머리에 이고 있기도 수월찮은 감각을 품고 있는 게 나으리오.

여름 방학, 찌는 듯한 무더위에 기어코 방학식 날짜가 예정보다 앞당겨졌다. 교실마다 이루어지는 대청소는 저마다 앓는 소리를 나게 한다. 복잡다단한 교실에 덩그러니 서 있을 수 없어서, 자연스레 복도를 찾는다. 아니, 박지민을 찾는다. 다른 날도 아니고, 방학식인데. 방학식은 와야지. 챙기는 이 없이 써늘하게 방치되고 말 화분을 나누어 가지려는데. 눈 안에 들지 않더라도 본디 곰살맞고, 자상한 편이니까. 거기에 작은 손을 가졌다. 한번에 다 잡히는 작은 손. 제대로 잡아 본 적도 없지만. 봄을 물들였고 여름을 머금을 화분을, 아, 복도에서 홀로 나뒹군다. 박지민, 결석. 곧장 교실로 돌아간다. 흙이 말라서 뭉쳐 있던 덩어리가 건조하게 부스러지는 화분 두 개를 팔로 안아 든다. 남은 팔에는 가방을 걸치고, 이탈한다. 무단 이탈에 대한 닥칠 뒷일까지 걱정할 겨를 없이. 종례까지는 시간이 빠듯했다.
​​
흙먼지, 모래바람, 투명 인간. 아무렇게나 놓인 철근에 철퍼덕 앉아 버린다. 화분에 물을 좀 주고 올걸, 건조하기 그지없다. 발 아래 매미 소리를 내며 채이는, 신문지에 물 먹인 색을 입은 자갈들. 파도 없는 해안가라면 바다도 아닌가. 두 손날을 모아 바닷물을 움푹 퍼서 쪼르륵, 화분에 물을 줬을 텐데. 참, 식물인데 짭짤한 바닷물을 줘도 되나? 가끔은 낡은 기분이 들어, 몸이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눈구멍에서 한 바가지 쏟은 바닷물. 몸을 반투명하게 본다면 걸을 때마다, 어깨까지 차 있는 바닷물이 출렁거릴 것이다. 한계치까지, 또 다른 하나의 바다를 만들 정도로 쏟아내도 줄지 않는다. 바다 주인은 박지민, 소유권이 걔한테 넘어가 버린 걸 어떡해. 먼지를 코로 입으로 귀로 마시다 보니, 나이 먹은 아저씨들 사이 홀연 나타났다. 안전모를 똑딱, 꽉꽉 채우면서. 김태형? 짬 없는 박지민은 부름에 발을 돌린다.

이거 주러 왔어. 두 개 다 죽일 수는 없어서, 네가 키우라고....

줄기가 더 자라서, 줄기를 집게손로 꾹 누르면 진액이 흠뻑 묻어날 정도로 자라서, 창문을 넘나드는 바람에 꽃 냄새도 물씬 풍길 때면 어린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 뒤에 숨어 이름을 부를게. 너는 화분이 시들게 두지만 마. 작은 것들은 아주 예민하니까, 한 번에 물을 주어서도 안 돼. 좋은 말을 해 주고, 걸러진 정결한 사랑을 줘야 돼. 안타깝지만 시들어 버려 때 아닌 시기에 찾아온 가을 잎은 지나치지 말고 떼어내 줘. 옆으로 뻗어 축 늘어져 있기에 숨이 차서 그런 것일 테니까. 그때까지 보여 주고 싶은 자잘한 낭만들을 켜켜이 쌓을게. 화분은 사실 나무였다든지 하는 것만큼, 말도 안 되는 반전이 일어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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