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슙뷔 거미 죽이기

우주 배영 2017. 6. 5. 16:39



깡말라 각진 어깻죽지에 하나, 맨들한 미끄럼틀을 방해 없이
쭉 타고 내려와서 안쪽으로 굽는 살에 하나. 다리 긴 거미가 팽팽히 줄을 치고 산다. 큼지막한 타란튤라 두 마리. 비쭉비쭉 솟은 털의 디테일 때문일까, 잉크 그림일 뿐인데도 닿으면 안 될 것같이 생긴. 뒤척이다 꾸는 꿈에는 매번, 거미가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와서는 긴 다리를 이마에 딛고, 뻥 뚫린 입에 거미줄을 친다. 입가에서 입가로, 중앙에서 지그재그 줄을 치며 마무리짓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손가락을 벌릴 수 없게 칭칭 감아 버린다. 땀벼락을 맞은 채 깨어나 보면 벽에 걸린 알록달록한 칼 뒤로 새끼 거미가 지나가는 환영을 본다. 꿈을 꾸는 것뿐만 아니라, 모양새만 갖추고 있는 화장실 하수구에서 초록색 등을 가진 새끼 거미 떼가 역류해 올라오는 것에 종종 구역질을 한다. 예삿일이며, 눈 깜빡 않고 물자국이 남아 얼룩덜룩 청결하지 못한 거울을 본다. 거울 속 달을 걷는다. 반대편으로 가도 달, 행선지를 몰라 잠시 행진을 멈추면 천지가 무너지고, 트로이가 떠오르고 진공 상태에 함몰된다.

가끔, 아니, 자주. 음곡에 꽁꽁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다. 베개에 뒤통수가 움푹 묻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때, 종일 귀가 터지도록 음악을 듣는다. 목에 줄을 감는다. 선율에도 팔다리가 휘감겨, 끝내 지쳐 귀를 감으니 깨진 몸 일부가 울고 있는 듯하다. 깨질 대로 깨져 금간 균열 틈새로 떨어지는 무수한 벼락, 뾰족한 끝은 능금 빛을 내다가도 금방 삭아서 볼품없어진다. 묵직한 벼락을 쏟아내니, 한결 가볍다. 구태여 주워 담지 않는다. 한동안 균열이 아물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허리를 숙이고 주워 봤자, 집안에서 질질 흘리고 다닐 텐데. 발에 거슬리게 채이든, 누워 있는 침대에 가득 쌓여 깔리든, 이제 모르겠다. 우물을 파서 잔해를 까마득한 아래로 내던지던 때가 있었는데. 날카롭고도 가는 각이 우물 벽에 긁히고 부딪히면 비명 소리가 들렸다. 버려져 영구한 추락을 당하는 게 두려웠을지도. 손톱으로 할퀸 듯한 흔적에서는 계속해서 소리가 들린다. 빛도, 마찰력도 없이 팽개쳐진 불우한 천운석과 같은 번개야.

아저씨, 저 살려 주지 마요. 왜 살게 두는 거예요? 뜻 없는 표정은 아무래도 읽히지 않는다. 이불을 가득 끌어안는다. 요란한 프린팅 셔츠에, 정장 구두. 그 안에는 두 마리 거미가 살고 있지. 셔츠가 갑갑할 만도 한데, 거미는 아무런 불만도 내비치지 않는다. 나를 응시하고 있을까. 집 잘 지키고 있어. 철제문이 천둥 같은 소리를 낸다. 문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우리 엄마 아빠한테 그랬던 것처럼, 죽여 버리라고! 가뭄인 줄 알았더니, 어디에서 맺히기 시작한 건지, 나는 악을 참지 못하고 운다. 섬과 섬 사이 억센 조류를 만난다. 어디까지 휩쓸려 가나, 눈앞에 물빛. 아득하게 가라앉으며 문득 깨닫는다. 꿈에서가 아닌, 실제로 거미줄에 걸려 산다는 것을. 더 이상 폐에 물이 차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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