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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뷔 가는 다리

우주 배영 2017. 6. 11. 20:37



​회고에는 몽롱한 여명에 우거진 안개. 지중 깊게도 박힌 뿌리들의 붐비는 난교, 그림자에 스며들어 부재만 달랑 남긴 의식아. 광염은 한밤중 은하를 뜨거운 색으로 녹녹히 흘러서 천체 무리를 모서리부터 달궈 발열을 이기지 못해 화마를 따라 절반을 잃고 뚝뚝 흐르는가 하면 10의 43승 초의 눈금을 만들어 빼곡히 검은 입이 박힌다. 탄생, 탄생, 탄생. 참혹한 폭발 흔적, 잘게 부스러진 별 시체가 드넓게 포개져 칠석 작교와 같은 다리를 이루고, 또 다른 우주로 가는 다리. 지구를 감싸러 가는 달이다. 지구와 이름 모를 새에게 공전 궤도를 맞춘 서슬 퍼런 달. 머무르는 새가 흘린
​눈물로 큰물이 들어차기도 하고, 표면을 깨고 슬금 자란 빙하는 평평한 암흑 천장을 뚫을 듯 솟구치기도 한다. 야윈 채로 얼어 버린 기포가 소리 없이 터지면, 저들끼리 엉겨붙어 빙하를 차근차근 둥글게 따라가는 고적한 칠정 나이테. 나이테에 손을 가져다 대다가, 두 손으로 저온 화상을 받는다. 조각 기둥을 겁없이 만진 대가로 남은 그을린, 악수 자국. 그을음에서 시간을 읽는다. 문득 코로나를 쉬지 않고 뱉는 태양을 궁금해한다. 보이지 않는 태양의 희박한 파랑. 파랑을 외로이 격리시키는 하얀 빛. 순백이 끓으면 한순간 붉어지고, 해빙된 민물에 잠시 푹 담갔다 빼면 소란을 겪은 청색이 된다. 달은 늘 푸르스름과 온전하다. 그곳에서는, 이곳 뒷면이 보입니까? 위성을 띄워, 금사슬 나무 탐스럽게 열린 언덕을, 벼랑일지도 모르는 오르막을, 새벽과 지난다.

​지는 태양이 더 뜨겁다. 활활 저무는 것에 취하며, 무중력을 껴안는다. 떠오르고, 뒤집히고, 머리로 서서 바라보면 수평선을 마주하고 잔물결에 빠져 일렁이는 상념, 절정은 죽음이다. 표백될 수 없는 그을은 손바닥과 헤치지 못하는 흑야. 호사스러운 섬 하나 떠오르고, 월광은 달음질치다 기슭에 주저앉는다. 회색으로 반쯤 찬 달은 자리를 잃고 기울지도, 잠들지도 않는다. 멀찍이 고동 소리가, 물밑으로 기어든다. 고동은 무엇과 무엇을 잇는 다리일까. 우리를 잇는 다리는 파괴되고 없다. 무중력으로도 닿지 못하는, 오직 두 날개로 사해 위를 비행하는 새만이 목청을 지저귀며 무너진 다리를 횡단한다. 날갯짓마다 시가 되어 날리는 깃털을 주워, 팔뚝과 등 뒤로 부착하려 애를 쓴다. 비행을 꿈꾸며. 흑야를 가로지르는 황홀한 비행을 꿈꾸며. 괴물 입속이라면, 필시 간이역 취급을 하고 이빨을 뽑아서라도 입을 벌려낼 것이다. 너는 푸른빛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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