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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뷔 유실 청춘

우주 배영 2017. 7. 1. 21:56



잃어버린 청춘, 잃은 청춘의 색을 찾았다.

1.
지도에는 명시되어 있을까 싶은 촌구석. 지민은 그런 촌구석에서 태어났다. 별다른 불만 없이 자랐고, 남들보다 조금, 조금 더 열심히 공부를 했으며, 듣기만 했던 서울을 궁금해했다. 부모님께서도 마찬가지로 머리 좋은 지민이 서울로 출세하기를 바라셨고, 착한 아들의 목표는 서울 상경이었다. 처음 뚜렷한 목표를 가지게 된 때가 중학교 1학년 끝자락. 처음 태형을 만나게 된 때도.

2.
이런 촌구석에 누가 이사를 오나, 반에 전학생이 온다는 소식에 아침부터 답지 않게 학교가 떠들썩했다. 지민은 가만히 책상에 턱을 굈다. 일순간 조용해지더니, 드르륵 열린 앞문으로 담임 선생님과 그 뒤로 전학생이 따라 들어왔다. 우물쭈물거리는 게, 살가운 성격은 아닌가 보다. 적응하기 힘들겠네,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건너 건너 아는 사이일 수밖에 없고, 쟤가 걔고 걔가 쟤였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매일 같은 얼굴 지겹게 보다가 새로운 얼굴에 흥미를 보였다. 아주 많이. 전학생은 그런 흥미가 달갑지 않았는지, 한결같은 미지근한 반응에 아이들은 에이, 재미없다.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전학생 이름은 김태형이더랬다. 태형, 군더더기 없는 이름. 박지민, 전학생 잘 챙겨 줘라. 지민은 반장이다.

3.
지민에게는 이렇다 할 친구가 없다. 인간 관계에서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소중함도 간절함도 느끼지 않았다. 누군가와 섞인다는 게 거북하기까지 했다. 부모님께서는 곧 헤어질 친구들과 친하게 지낼 생각일랑 말고 그 시간에 공부하라는 마인드로 일관하셨다. 다시 말하지만, 지민이 어느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은 것은 자의다. 부모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다. 늘 혼자였고, 곁에 두는 법 없었고, 사람을 배제하며 살았다. 가깝다는 것을, 심리적 거리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4.
지민은 가족과 저녁 시간을 가진다. 어머니 아버지 외동인 지민이 전부다. 가족 전원이서 한 식탁에 둘러앉지만, 어디인가 채워지지 않는 꺼림칙한 느낌이 들고는 한다. 어머니께서 된장국을 숟가락으로 뜨며 무심하게 말씀하신다. 아들, 반에 전학 온 애 있지? 그 애랑 가까이하지 말아라. 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하셨지, 특정인을 콕 집어 말하시는 것은 처음인지라 지민은 문득 궁금해졌다. 왜냐고 묻기도 전에, 무당집 아들이란다. 근처도 가지 말아라, 응? 속이 끓었다. 무엇이라 칭하던가, 반항? 일순, 멍청하다는 생각을 했다. 무당집 애, 처음으로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품었다. 네, 어머니. 지민은 착한 아들이다.

​5.
반 애들 모두 어젯저녁 집에서 한소리 듣고 왔는지, 태형 눈치를 살살 본다. 대놓고 티를 내네, 바보들. 태형이 전학 온 이유를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까발려지다니, 쟤도 기구하다. 아마 조용했던 게 폭풍 전야였을지도. 큰 덩치로 위협하기를 좋아하고, 겁먹은 아이들을 멋대로 휘두르는 자칭 우두머리가 기어코 일냈다. 책을 정독하던 지민도 덩치 쪽으로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야, 김태형. 너도 귀신 볼 줄 아냐? 네 애미처럼.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책상이 크게 덜컹이는 소리만 났을 뿐. 벙어리야? 대답해, 새끼야. 지민은 혀를 차고는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해, 자습 시간이야. 사실 최고 권력자는 지민이다. 사회에서는 저런 덩치를 바라지 않는다. 선생님들께 사랑받던 지민이었으므로, 유독 지민에게만 유한 반응을 보이셨다. 멍청한 줄만 알았던 덩치도 그 순리를 진작 알고 있었고, 애꿎은 태형 책상에 가래침을 걸쭉하게 뱉더니 자리로 돌아갔다. 다리 떠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그 한마디에 속이 뒤틀린 게 분명하다. 무식한 놈.

6.
태형은 완벽히 고립되었고,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7.
도난 사건이 벌어졌다. 도난이라고 판단하기 이르지만, 돈 잃어버린 당사자가 도난이라고 칭했다. 반장 지민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 생긴 셈이다. 울고 불고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생각해 보니 그도 그럴 것이지, 당시 3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잃어버렸으니. 지민은 애를 붙잡고 천천히 물었다. 샅샅이 뒤져 본 게 맞느냐고, 애초에 학교에 가지고 온 게 아니지 않을까? 끝까지 듣지도 않고 세차게 고개를 젓는다. 그게 아니라며 귀가 쨍하게도 울어대고, 지민은 한숨을 푹 쉬었다. 난리통에도 태형은 다른 세상에 있는 듯, 정수리를 보이고 엎드려 있다. 이무래도 그렇겠지.
​쉬는 시간에 타 반 학생 데리고 온 사람, 손 들어 봐. 다들 혹시나 뒤집어쓰이게 될까, 눈알만 굴리며 손을 움찔 떨기만 했다.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반장, 의심되는 사람은 있어. 그게 누구인데? 일제히 질문을 쏟았다. 김태형, 김태형이 아까 이동 수업 때 제일 늦게 나갔거든. 제일 유력하지 않아? 태형은 호명되었는데도 미동 없이 엎드려 있다. 지민은 힐끔 태형을 보고는, 쟤 아니야. 단언하고 말았다. 네가 어떻게 알아? 왜냐, 태형은 그럴 군번이 안 된다. 그러지 말고, 가방 뒤져 보자. 어차피 쟤 지금 자잖아. 그래라, 너희들 마음대로 해. 엎드려 있던 태형 어깨가 작게 떨렸다. 처음부터 자고 있던 게 아니구나, 쟤.

8.
행방이 묘연했던 3만 원은, 집에 고이 잘 있다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당사자는 어머니 연락을 받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물론 태형 가방을 털고 있던 애들과 처음 태형을 의심했던 애도 마찬가지로. 나중에 김태형 깨면 사과해, 알겠지. 아이들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 말이 맞았네....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고. 반장은 담임 귀에 들어가기 전에 해결된 게 천만다행이었다. 자고 일어난, 아니, 자는 척하던 태형은 일어나자마자 여럿에게 사과받았다. 지민을 힐끗 쳐다보고, 다시 엎드렸다.

9.
여전히 태형은 배척당했고, 어느 소속에도 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단체 활동이 있을 때마다 이도 저도 아닌 채 이끌리기만 했다. 다들 알게 모르게 태형을 꺼렸으니, 짝꿍은 당연하게도 반장 지민이 하게 되었다. 그게 3학년 때까지 지속되었다. 학교가 작은지라, 3년 내내 한 반으로 굳어지는 시스템이었다. 남들 모르게 계속해서 궁금해했다. 누가 누구를? 지민이, 태형을.

10.
스토킹, 하굣길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태형은 집에서 그리 멀리 살고 있지 않았다. 대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부적들, 깃발. 기분 나쁘다거나 하지 않았다. 스토킹은 5일을 못 가서 발각되었다. 태형에게. 여느 때처럼 뒤를 밟고 있었는데, 태형이 몸을 홱 돌렸다. 정적. 너 왜 나 따라다녀? 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려하게 말을 잘하던, 그 반장이. 왜 나 따라다니냐구. 거리 유지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온다. 얼른 말해, 우리 집이 궁금했어? 궁금하면 와 보고 싶다고 말을 하지, 몰래 따라다닐 건 뭐야. 아무래도 태형은 화가 난 듯하다. 지민은 말을 고르고, 고르다가 드디어 입을 뗐다. 너랑, 친해지고 싶었어. 미안해, 안 그럴게. 나도 내 행동이 잘못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반장, 너 되게 웃기다. 당황한 모습 처음 봐.

11.
학교를 마치면 뒷산 계곡으로 놀러갔다. 나 친구 처음 사귀어 봐. 나도야, 네가 내 첫 친구야. 정말? 반장은 애들한테 인기 많잖아. 안 그래, 누가 인기 많대....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지? 부끄러워한 적도 없거든. 무더운 여름날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머리 끝까지 올랐던 열이 식었다. 와중에 태형은 다리를 가만 두지 못하고 물을 첨벙거렸다. 그 때문에 옆에 있던 지민이 봉변을 당하고 만다. 아, 김태형. 물 다 튀었잖아. 그만해? 싫은데! 교복이 젖든 말든 태형이 물속으로 뛰어들면 지민은 속수무책으로 물폭탄을 맞았다. 끝내 둘 다 쫄딱 젖어서는 맨발로, 한 손에는 신발을 들고 맨발로 길을 걸었다. 한 발 뗄 때마다, 물에 젖어 아스팔트에 발자국이 찍혔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길에 꽃이 예쁘게 피었길래, 태형에게 주려고 했다. 하지만 야, 왜 꽃을 꺾어! 타박하는 바람에 줄기에 손만 댔지 주지 못했다. 꽃은 꺾는 거 아니야, 바보야. 우리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꽃도 아프다고 그랬어. 아파, 아파. 이렇게. 태형은 목소리 변조까지 하며 아픈 시늉을 했다. 요즘 들어 지민은 웃는 일이 잦아졌다.

12.
어머니께서 급하게 지민을 깨우셨다. 아들, 일어나 봐. 무당집에 불이 났대. 지민은 꿈꾸는 줄 알았다. 꿈 일부인 줄 알았다. 무당집, 무당집 아들 김태형. 신발도 신지 않고, 태형 집으로 내달렸다. 어둡고 음산한 밤길을 달음질치며 앞이 흐릿해지기에 자신이 운다는 걸 깨달았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 훔쳐도 비를 맞는 것처럼 앞이 흐렸다. 발바닥이 아픈 줄도 몰랐다. 험한 길을 박차면서도, 피가 배어나는 줄도 모르고, 태형 집 쪽으로 달리기만 했다. 숨이 끝까지 차올라 호흡이 달려도, 멈출 수 없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다다라 사람들을 뚫고, 화마에 휩싸여 녹고 있는 집을 대면했다. 얘야, 위험해! 지민은 그 열기를 느끼지도 못했다. 신경은 온통 태형에게 쏠려 있었디 때문에, 뜨거운 줄도 몰랐다.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갔고, 어른들이 지민을 붙잡고 끌어냈다. 끌어내는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종국에는 주저앉고 말았다. 태형아, 태형이는요? 태형이는 살아 있어요?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은 구했지만, 어린애는 아직 안에 있는 것 같다고, 지민은 까무룩 기절했다. 마치 누군가 지민의 전원을 끈 것처럼. 둘이 가던 계곡물을 주머니에 담아올걸 그랬다.

13.
지민이 받은 충격은 꽤나 커서, 이틀 후에야 깨어났다. 어떤 일로 기절한 건지, 왜 병원 침대에서 잔 건지조차 잊었다. 그리고 네모나게 웃는 얼굴, 지민은 또 다시 심장을 움켜쥐고,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피가 거꾸로 돌아, 머리가 터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팔에 꽂혀 있는 바늘들을 전부 뽑고서 쉴 새도 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잴 것도 없이 발이 움직이는 대로 복도에 나갔다. 환자분, 이러시면 안 돼요. 난동을 피우는 덕에, 의사와 간호사들 여럿 붙어 지민을 제압했고, 소식을 들은 지민의 어머니께서 한달음에 오셨다. 엄마, 엄마, 태형이는요. 김태형은 어떻게 됐어요? 그게, 살아는 있는데, 다른 지역으로 갔대. 태형의 소식을 말하고 싶지 않았는지,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떼셨다. 불은 누가 질렀대요? 누가, 누가 걔네 집을.... 지민은 말하면서도 숨이 차는지 헐떡거렸고, 팔뚝을 붙잡혀 주사를 맞았다. 진정제에 취해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14.
한참 후, 지민은 더 이상 태형을 찾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소문은 구름보다 빨라서, 박지민 저대로 미친 게 아니냐는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부모님께서 바라는 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공부만 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고. 방화범 못 잡았으면, 그거 귀신이 장난한 거 아니야? 재수없게 입방아를 찧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사이 지민은 얼고 녹고를 반복하고 있었다는 건, 아무도 모르겠지.

15.
가고 싶던 대학에 붙었다.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지긋지긋한 촌구석을 놓고. 지민은 생각했다. 서울도 별거 없네.

16.
박지민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밤새 술을 진탕 마시고, 쏟고, 마시고 놀다가 늦잠을 자 버렸다. 일어난 대로 헐레벌떡 동네 정류장까지 단숨에 뛰어갔더니, 버스는 이미 떠난 지 오래다. 별수 없지, 텅 비어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왜인지 모르게 달짝지근한 여름 바람 냄새, 옆에 사람이 앉는 줄도 모르고, 노래를 고르고 있었는데, 익숙한, 그리고 바라던 얼굴이. 바람에 머리칼이 다 넘어갔는데도, 그 예쁜 얼굴이, 사치스러운 여름의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잊은 척했던 청춘을, 마음을 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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