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움직임이 느리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눈을 뜨고 있어도 감은 것처럼, 숨을 쉬고 있어도 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전정국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전정국과 나는 서로를 이상하다고 생각해 다섯 번을 헤어졌다가 만났고, 지금도 헤어지고 있는 중. 그거, 진짜 웃긴 새끼다. 헤어지자마자 여자 소개를 받고 다닌다. 이 수법도 통하지 않으니까, 일부러 겹치는 약속을 잡는다. 거기에서 이제, 보여 주기 식 썸을 타는 거지. 뻔하다. 애걸복걸하기를 바라는 거다. 정국아, 형이랑 다시 만나자. 듣고 싶어 하니 한 번쯤은 해 줘야 하는데, 왜 이렇게 놀리고만 싶은지. 최고로 웃긴 게, 늘 미안하다고 잡는 건 전정국이다. 이런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다가 여든아홉 살이 될 것 같..
이거 너무, 하이퍼 리얼리즘이네.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음악 들으면서 울고, 영화 보면서 울고, 고민 자랑 프로그램 보면서 운다. 슬픈 이야기는 다 내 일 같아서. 하나. 울고 싶다고 우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핑계거리를 만든다. 둘. 나를 투영해서 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나보다 불쌍한 사람들 천지고, 그러므로 나 정도면 불쌍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 불쌍함 자격증을 딴다면, 9급은 되지 않을까. 저기, 지구 반대편에서는 흙으로 만든 쿠키로 끼니를 때우는걸. 보통, 사랑을 시작하겠다고 해서 사랑하나? 오후 여덟 시 사십 분부터 너를 사랑할 거야. 물론 있기야 하겠지, 소수를 응원한다.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인지하는 데에도 꽤 걸린다. 금사빠 님들 제외. 그 중에서도 내가 걔를? 설..
분리 불안과 애정 결핍에 시달렸다. 마냥 내 사랑을 갈구하는 김태형. 애정에 목말라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나를 옭아맸다. 그렇게 나밖에 모르는, 나 없이는 숨도 못 쉬는 어린애 같은 김태형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태형아, 누가 이렇게 만들었지? 너를 좀스럽게 갉아먹는 건 누구야? 김태형은 어딘가 불안했다. 불안한 만큼 살을 비벼 왔다. 섹스로 사랑을 확인했다. 그에게도 단출하고 소소한 취미 생활이 있는데, 예쁜 속옷을 닥치는 대로 모았다. 그 취미가 생긴 이유도 바로 나다. 충분히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김태형은 스스로 납작한 가슴 위로 브래지어를 채우기도 한다. 채워 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풀어 주는 걸 더 좋아하는, 앙큼한 김태형. 잦은 외출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남겨진 빈집에서 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