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uesummer
깡말라 각진 어깻죽지에 하나, 맨들한 미끄럼틀을 방해 없이 쭉 타고 내려와서 안쪽으로 굽는 살에 하나. 다리 긴 거미가 팽팽히 줄을 치고 산다. 큼지막한 타란튤라 두 마리. 비쭉비쭉 솟은 털의 디테일 때문일까, 잉크 그림일 뿐인데도 닿으면 안 될 것같이 생긴. 뒤척이다 꾸는 꿈에는 매번, 거미가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와서는 긴 다리를 이마에 딛고, 뻥 뚫린 입에 거미줄을 친다. 입가에서 입가로, 중앙에서 지그재그 줄을 치며 마무리짓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손가락을 벌릴 수 없게 칭칭 감아 버린다. 땀벼락을 맞은 채 깨어나 보면 벽에 걸린 알록달록한 칼 뒤로 새끼 거미가 지나가는 환영을 본다. 꿈을 꾸는 것뿐만 아니라, 모양새만 갖추고 있는 화장실 하수구에서 초록색 등을 가진 새끼 거미 떼가 역류해 ..
시계가 멈췄다고 시간도 멈췄을까, 뒤로도 갈까. 시계를 고치지 않는다. 뒤얽힌 시간 속에 머물 수 있게, 갇힐 수 있게. 멈춘 오전, 니은에 걸터앉아 창을 옆으로 밀어 연다. 먼지 구덩이와도 같은 창틀, 벌레들은 생명을 잃고 말라비틀어져 푸슬한 먼지 이불을 덮은 채 어떤 봄눈이 세차게 휘날리는지도 모른다. 둥글고도 모난 눈무덤 위 몸을 뉘인다. 얼굴, 가슴, 배, 다리. 죽죽 날리는 눈발에 무덤 주인은 내가 된다. 봄눈은 시간이라, 그렇게 두두룩 폐에 쌓여 호흡하는 코 입으로 우리를 내쉰다. 틈 없이 손가락을 딱 붙이지만, 회고는 한 줌 잡히는 법 없다. 노엽게도 작은 비명은커녕, 허연 공백만을 남긴다. 아래로 깊은 공백, 살점을 이로 물어뜯고 푹 파인 살 밑을 엄지로 꾹 누른다. 하얗게 질릴 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