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다히 들어오는 해가 내쏘는 일광에 직면하는 자리, 교실 창가에 작은 화분 두 개. 크기가 얼마나 조그마하느냐면, 손바닥 위 균형을 유지한 채 우뚝 세울 수 있다. 정성을 쏟지만 별개로 작은 것에 대해 주저가 많다. 작은 것 앞에 더 작아지고, 나약해진다. 작은 화분에 비교하면 거대한 손이 속뜻과 달리 나가 해칠까 봐, 망가뜨릴까 봐. 화분, 조그마한 강아지, 그리고 자잘한 감정. 번번이 주관적인 무기가 될 걱정스러운 손을 등 뒤로 감추고 다니는 게 버릇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따갑고 날카로운 언사로 염통을 쿡쿡 쑤시는 것처럼, 길쭉하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눈알이든 푹 찌르는 망상을 하고는 한다. 차라리 짝사랑 같은, 담고 있기도 머리에 이고 있기도 수월찮은 감각을 품고 있는 게 나으리오. 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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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망상, 공포, 유희. 군데군데 스며 있는 퀴퀴한 냄새가 순간을 멀어지게 한다. 가냘픈 손목을 붙들고 있는, 얼마간 움직임이 있을 적마다 철그렁 소리를 내는 쇠붙이. 불필요한 발악으로 인해 서슬 퍼렇게 생긴 멍들은 낙인처럼, 살갗을 물감으로 매긴 것처럼 망울이 벙글었다. 장차 시들지는 않겠다고, 뼈만 남아 잘 마른 가죽을 매만진다. 돌아누운 채로 반응 없는 등. 야윈 등마루가 요란하다. 둥글게 아치를 이뤄 불거진 척추뼈. 뭉뚝한 손끝으로 선을 따라 타고 오른다. 부서질 것 같은 어깻죽지까지 다다르고, 조밀하게 박혀 있는 솜털 위로 콧김을 내쉰다. 시종여일한 무반응에 물러서랴, 잠잠한 뒤통수는 짓궂은 오기를 부른다. 물고 늘어지기 좋게 돌출된 귓불을 한입에 집어삼킨다. 철그렁, 보다 취약한 귀...
망망하게 깔리는 신디사이저, 언제나 왜 이렇게 신나 있는지. 얼굴은 딱히 신나 보이지도 않는다. 물기가 축축하게 스며든 도시, 사방으로 뻗친 푸시시한 머리카락. 의미 없는 허밍은 뿌리처럼 내뻗은 심장을 저릿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젖어 있는 교복 바짓단.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무난한 네이비블루가 깊이 젖어 짙은 경계선을 모양낸다. 그 밑으로 딱하게 드러난 허한 발목이 버석한 입으로 내는 허밍의 의미를 찾는다. 끝까지 차올라 흐르는데도 이토록 건조한 어항. 진한 네이비블루만이 물살에 거꾸로 물장구친다. 낡고 헐어 다 헤진 누런 벽, 엉겁결에 붙어 있는 듯한 걸이에 건조한 접이우산. 건조함은 이대로도 모자란가 보다. 가야지, 태형아. 우리 집은 여기인데, 내가 어디를 가? 계속..
어디에서든 웅크려 앉는 게 습관이 되었다. 웅크리고 있으면 거꾸로 세상을 품을 수 있다. 머리 위로 태양이 녹아 흐르고, 새벽은 늘 파르랗고, 눈을 뜨고 있는, 전파가 잡히지 않는 흑백 텔레비전. 의지에 상관없이 피를 토한다. 입가는 한낱 네발짐승처럼 선혈 범벅으로, 그것을 말끔히 닦을 수도 없다. 그가 오기 전까지는. 곳곳에 웅덩이진 핏물, 연달아 오는 공명은 나를 무능하게 만든다. 눈앞에서 녹색 공기 방울들, 연달아 덮치는 과호흡까지. 폐쇄하고 있는 철제문 너머에서 쿵쿵. 마지막으로 떠다니는 보랏빛 빗금을 만났다. 붙들어 잡고 있는 정신을 놓아, 3, 2, 1.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철제문 개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무색무취 알약 더미. 잠시 심장을 멈춘다. 여린 목구멍의 피맛을 맡는다. 희멀건 침대 ..
봄인데도 벚꽃이 없는 곳에는 어쩐 일이에요, 형. 그대로라니까요. 휠체어를 거뜬히 밀 수 있을 만큼 자란 것 말고는, 모두 그대로예요. 잿빛 하늘, 감흥 없는 도시. 화르르 녹는 태양, 태양마저 재색으로 보이는 환영, 이따금 색 빠진 풀밭에 구르는 나를 보기도 한다. 잔디를 한 움큼씩 뽑아, 엉망으로 만들며 누울 무덤을 애달게 찾는다. 머리칼에 붙어 나근나근 흔들리는 회색 잔디. 과연 색을 볼 수 없는 것일까, 파란 구름과 하얀 하늘처럼. 어리석게 색을 되찾는 짓은 하지 않는다. 회색보다 더 회색 같은, 우뚝 선 병원. 좀처럼 보기가 힘들어진 휠체어를 탄 사람, 아니, 형. 형의 환자복 위로 휘갈겨 쓴 내 이름. 감기인가 보다. 병원 앞 큰 나무 아래, 등을 기대고 다리를 쭉 뻗는다. 발끝에 피..